01. 가격표 뒤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
콘서트 표가 열리자마자 매진됐다. 정가는 12만 원인데 중고 거래 게시판에는 30만 원짜리 표가 올라온다. 반대로 비가 온 늦은 밤, 빵집은 남은 빵에 반값 딱지를 붙인다. 같은 종이 한 장, 같은 빵 한 봉지인데 왜 가격은 이렇게 흔들릴까?
가격표는 물건에 붙어 있지만, 가격을 움직이는 힘은 물건 바깥에 있다. 사고 싶은 사람과 팔고 싶은 사람이 서로 다른 계산을 들고 만나는 곳에서 가격이 생긴다. 그 만남을 가장 단순하게 그린 그림이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다.
사고 싶은 양과 팔고 싶은 양
수요는 소비자가 어떤 기간 동안 여러 가격에서 사고자 하고 살 수 있는 양의 관계다. 가격이 내려갈수록 더 많이 사려는 경향을 수요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공급은 생산자가 여러 가격에서 팔고자 하고 팔 수 있는 양의 관계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가격이 오를수록 더 많이 공급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기서 첫 구별이 중요하다. 상품 자체의 가격이 변해 같은 수요곡선 위에서 움직이면 ‘수요량의 변화’다. 소득, 취향, 관련 상품의 가격, 소비자 수처럼 가격 이외의 조건이 바뀌어 곡선 전체가 옮겨 가면 ‘수요의 변화’다. 공급도 마찬가지다. 상품 가격 때문에 곡선 위의 점이 움직이는 ‘공급량의 변화’와, 원재료비·기술·세금·생산자 수 때문에 곡선이 이동하는 ‘공급의 변화’를 나눠 보자.
스마트폰 가격이 내려 더 많이 산다면 수요량이 늘어난 것이다. 인기 드라마에 같은 모델이 등장해 어느 가격에서든 사고 싶은 사람이 늘었다면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반도체 가격이 올라 노트북을 만드는 비용이 커졌다면 노트북의 공급은 감소한다. 단어 하나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래프에서는 점의 이동과 곡선의 이동이라는 전혀 다른 사건이다.
균형은 ‘멈춤’이 아니라 맞물림이다
수요량과 공급량이 일치하는 가격을 균형가격, 그때 거래되는 양을 균형거래량이라고 한다. 현재 가격이 균형보다 낮으면 사고 싶은 양이 팔려는 양보다 많은 초과수요가 생긴다. 물건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가격을 위로 밀어 올리는 압력이 된다. 현재 가격이 균형보다 높으면 초과공급이 생기고, 재고를 줄이려는 판매자들의 경쟁은 가격을 아래로 누른다.
균형이라는 말 때문에 모두가 만족한 완벽한 상태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균형은 우선 서로의 계획이 맞물려 더 움직일 직접 압력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그 결과가 공정하거나 바람직하다는 보증은 아니다. 돈이 없는 사람의 필요는 구매력 있는 수요로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고, 오염처럼 거래 바깥 사람에게 미치는 피해는 가격에 담기지 않을 수 있다. 여덟째 꼭지에서 만날 시장실패는 바로 이 틈에서 시작된다.
곡선 두 개가 동시에 움직일 때
현실에서는 한 가지 힘만 움직이지 않는다. 전기차 보조금이 늘어 수요가 증가하는 동시에 배터리 원료 가격이 올라 공급이 감소할 수 있다. 이 경우 균형가격은 두 힘 모두 위로 밀기 때문에 상승하지만, 균형거래량은 어느 이동이 더 큰지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 지문에서 ‘불분명하다’는 말은 무지를 뜻하지 않는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의 상대적 크기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정확한 판단이다.
정보경제는 가격이 참여자 구성까지 바꾸는 장면을 보여 준다. 구매자가 품질을 가리지 못해 평균가격만 제시하면 좋은 상품 판매자가 먼저 떠날 수 있고, 남은 평균 품질이 나빠져 다음 가격과 거래량이 더 내려갈 수 있다. 기본 수요·공급 그림 위에 ‘누가 시장에 남는가’라는 정보 문제가 얹히면 시장은 한 번의 교차점이 아니라 라운드마다 구성이 바뀌는 되먹임이 된다.
이런 글에서
“시장균형은 시장수요곡선과 시장공급곡선이 교차하는 곳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출처: 한국은행, 「경제이야기 따라잡기(고등학생)_3. 수요·공급과 시장의 균형」
짧은 문장이지만 ‘교차’ 앞에는 각 가격에서의 선택이, ‘결정’ 뒤에는 초과수요와 초과공급의 조정이 숨어 있다. 그래프를 보면 점 하나만 보지 말고, 그 점으로 밀어 가는 양쪽의 압력을 함께 떠올려 보자.
출제 이력
출제 이력
평가원 · 2012학년도 9월 모의평가 — 수요곡선과 한계비용에 따른 가격 결정
한눈에 정리
이 꼭지에서 챙길 그림 하나
상품 가격 변화 → 곡선 위의 이동 → 수요량·공급량 변화
가격 밖 조건 변화 → 곡선 자체의 이동 → 수요·공급 변화
초과수요 → 가격 상승 압력 / 초과공급 → 가격 하락 압력
균형 = 계획의 맞물림, 공정성의 보증은 아님
생각해 볼 거리
배달비가 갑자기 올랐을 때 음식 주문량이 줄었다면, 음식 수요가 감소한 것일까, 음식의 수요량이 감소한 것일까? 어떤 시장의 가격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생각해 보자.
판정 보강 · 가격효과를 둘로 나누기
가격이 바뀌어 수요량이 움직였다는 데서 멈추지 말자. 전체 변화는 상대가격이 달라져 선택을 조정하는 대체효과와, 같은 소득의 구매력이 달라져 생기는 소득효과로 나뉜다.
- 가격이 내린 재화의 대체효과는 그 재화를 더 고르는 방향이다.
- 정상재의 소득효과는 대체효과와 같은 방향이고, 열등재의 소득효과는 반대 방향이다.
- 두 효과가 반대라면 크기까지 비교한다. 열등재라고 바로 기펜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지에서 ‘열등재’가 보이면 방향 하나로 끝내지 말고 대체효과와 소득효과의 크기를 함께 확인한다.
값을 올렸는데 매출이 줄어드는 까닭
가격 탄력성 · 변화율 · 총수입
영화관이 관람료를 올리면 한 장을 팔 때 받는 돈은 늘어난다. 대신 관객 일부가 다른 여가를 고르거나 관람을 미룬다. 매출이 늘어날지는 두 변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지에 달렸다. 수요의 법칙이 방향을 알려 준다면, 가격 탄력성은 그 방향으로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이는지를 묻는다.
천 원과 한 개를 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은 가격 변화율에 견준 수요량 변화율이다. 보통 가격과 수요량은 반대로 움직이므로, 민감도를 비교할 때는 비율의 절댓값을 쓴다. 가격이 조금 변할 때 수요량이 그보다 큰 비율로 달라지면 탄력적이고, 작은 비율로 달라지면 비탄력적이다. 천 원 오른 상품의 판매량이 열 개 줄었다는 정보만으로는 민감도를 알 수 없다. 원래 가격이 이천 원인지 이십만 원인지, 원래 백 개를 팔았는지 만 개를 팔았는지가 필요하다.
기울기와 탄력성도 같은 숫자가 아니다. 기울기는 가격과 수량의 절대 변화량을 비교하므로 원을 천 원 단위로 바꾸면 값이 달라진다. 탄력성은 변화율끼리 비교하므로 표시 단위에 좌우되지 않는다. 한 직선 수요곡선도 위치에 따라 가격과 수량의 기준값이 달라져 탄력성이 바뀔 수 있다. 그래프가 가파르다는 인상만으로 서로 다른 시장의 민감도를 바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매출을 움직이는 두 힘
총수입, 곧 매출은 가격과 판매량의 곱이다. 같은 수요곡선을 따라 탄력적인 구간에서 가격을 조금 올리면 수량 감소의 힘이 커 매출이 줄고, 비탄력적인 구간에서는 가격 상승의 힘이 커 매출이 늘어난다. 다만 큰 가격 변화를 다룰 때는 어느 구간의 탄력성을 어떤 기준으로 계산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처음 값 기준으로 가격을 10% 올리고 수량을 10% 줄이면 매출은 1.1×0.9=0.99배다. 증가율과 감소율이 같다는 이유로 정확히 상쇄된다고 할 수 없다. 실제 전후 값이 있으면 곱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분명하다.
시간과 대안이 민감도를 바꾼다
대체 수단을 쉽게 찾을수록 가격 변화에 크게 반응하기 쉽다. 어느 한 영화관의 요금이 오를 때와 모든 여가 활동의 비용이 함께 오를 때는 선택지가 다르다. 시간도 중요하다. 당장 통근 수단을 바꾸기 어렵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사나 교통수단 변경이 가능해져 반응이 커질 수 있다. 탄력성은 상품에 영원히 붙은 성격표가 아니라 시장 범위와 기간에 따른 관계다. 또한 매출이 늘었다고 이윤까지 늘었다는 보장은 없다. 더 많은 관객을 받느라 추가 인건비와 시설비가 발생한다면 비용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직접 만든 예
표 한 장이 1만 원일 때 100명이 오던 공연이 1만 2천 원으로 올린 뒤 70명을 받았다. 매출은 100만 원에서 84만 원이 된다.
판매 한 건의 수입은 늘었지만 떠난 관객의 몫이 더 컸다. 이 사례만으로 모든 가격대의 수요 탄력성이 같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 살피는 값 | 비교하는 것 | 그 값만으로 모르는 것 |
|---|---|---|
| 수요곡선의 기울기 | 가격·수량의 절대 변화량 | 기준값을 반영한 반응 비율 |
| 가격 탄력성 | 가격·수량의 변화율 | 추가 판매에 드는 비용 |
| 매출 | 가격 × 판매량 | 비용을 뺀 이윤 |
다시 읽을 때
가격의 방향에 수량의 반응 크기를 더하고, 매출 다음에는 비용을 살핀다.
근거 자료: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탄력성 / OpenStax, Elasticity and Pricing / KDI, 탄력성과 총수입의 계산에 관한 경제백문백답 / OpenStax, Price Elasticity of Demand and Price Elasticity of Supply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