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부 · 기본 · 2/15 · 약 4

헌법·기본권·법치주의

01. 권력을 묶는 가장 높은 약속

어느 학교가 교칙을 새로 만들었다고 해 보자. 학생의 휴대전화를 교문에서 모두 걷고, 가방을 예고 없이 검사하며, 불만을 말한 학생은 따로 기록한다. 학교 질서를 지키겠다는 목적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수단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는지, 제한은 꼭 필요한지, 덜 침해적인 방법은 없는지 물어야 한다.

국가 권력은 학교의 규칙보다 훨씬 강하다. 세금을 걷고, 자유를 제한하고, 때로는 사람을 구금할 수도 있다. 헌법은 바로 그 강한 힘의 출발점과 경계를 함께 정한다. 국가를 움직이는 설계도인 동시에, 그 설계자가 넘지 못할 울타리다.

헌법은 국가를 만들면서 국가를 제한한다

헌법은 국회·정부·법원 같은 국가기관을 두고, 각각 어떤 권한을 어떻게 행사할지 정한다. 동시에 모든 국가기관이 존중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을 적는다. 권력을 조직하는 문장과 권력을 제한하는 문장이 한 문서 안에 함께 있는 셈이다. 헌법이 최고규범이라는 말은 단지 가장 앞에 놓인 법이라는 뜻이 아니다. 법률과 명령을 포함한 아래 규범이 헌법에 어긋날 수 없다는 효력의 질서를 뜻한다.

기본권의 중심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있다. 평등권,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재산권, 사회적 기본권은 서로 모습이 다르지만 인간을 권력의 수단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바탕을 공유한다. 국가가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 권리도 있고, 국가가 함부로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권리도 있다. 그래서 기본권 지문에서는 ‘자유냐 국가냐’라는 한 줄 대립보다, 어떤 권리를 어떤 방식으로 보장하는지 먼저 살펴보자.

기본권은 강하지만 언제나 무한하지는 않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타인의 명예를 거짓으로 훼손할 자유까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집회의 자유와 시민의 안전, 재산권과 환경 보호처럼 기본권과 공익 또는 기본권끼리 충돌하는 장면이 생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정한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법률로’라는 말은 중요하다. 행정기관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내부 지침을 만들어 국민의 중요한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법률유보의 생각이다. 법률이라는 형식만 갖추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목적이 정당한지, 수단이 목적에 맞는지, 덜 침해적인 방법은 없는지, 얻는 공익과 잃는 자유가 지나치게 불균형하지 않은지를 살피는 과잉금지원칙이 뒤따른다.

법치주의는 ‘법이 있다’보다 두꺼운 말이다

독재자도 명령을 글로 남길 수 있다. 따라서 법치주의를 ‘법에 따라 다스림’이라고만 외우면 부족하다. 권력 행사의 근거가 미리 정해져 있어야 하고, 규칙은 일반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하며,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권력은 재판과 통제를 받아야 한다. 법 자체도 헌법과 기본권의 한계를 지켜야 한다.

‘법치’라는 개념은 이 점을 권력의 예측 가능성으로 풀어낸다. 시민은 내일 어떤 행동이 금지될지, 국가가 어떤 절차를 거쳐 나를 제재할지 미리 알 수 있어야 삶을 설계한다. 소급해 벌하거나, 모호한 말로 마음대로 제재하거나, 같은 사건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처리하면 법은 권력을 묶는 줄이 아니라 권력이 휘두르는 도구가 된다.

권리의 문장 뒤에는 심사 순서가 숨어 있다

기본권 사례를 만나면 네 칸으로 읽어 보자. 첫째, 어떤 기본권이 관련되는가. 둘째, 국가의 조치가 그 권리의 보호 영역을 제한하는가. 셋째, 제한에 법률상 근거가 있는가. 넷째, 목적과 수단 사이의 비례가 지켜졌는가. 이 순서를 잡으면 ‘공익이니까 가능하다’거나 ‘기본권이니까 절대 안 된다’는 성급한 결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기본권 심사도 구체적인 사건에서 이 질문들을 정교하게 다룬다. 결론만 외우기보다 제한의 목적, 수단, 대안, 손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자. 헌법은 추상적인 선언문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행동을 재는 실제 자다.

기본권 제한을 심사하는 길
읽기 포인트: 국가의 좋은 목적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근거·수단·침해 정도를 차례로 확인한다.

이런 글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 국가법령정보센터, 「대한민국헌법」

국가가 권리를 선물한다는 문장이 아니다. 국가가 확인하고 보장해야 할 출발점을 밝힌 문장이다. ‘보장할 의무’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함께 읽어 보자.

출제 이력

출제 이력

평가원 ·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 행정규제와 법률유보

한눈에 정리

헌법 지문을 여는 네 개의 열쇠

최고규범 → 아래 법규범이 어긋날 수 없는 기준
기본권 → 인간의 존엄을 구체적인 권리로 펼친 것
법률유보 → 중요한 제한에는 국민 대표가 만든 법률의 근거가 필요함
과잉금지 → 목적·수단·덜 침해적인 대안·손익의 균형을 심사함
법치주의 → 권력도 미리 정해진 헌법과 절차에 묶임

생각해 볼 거리

학교 안전을 위해 모든 학생의 가방을 매일 검사한다면 어떤 권리와 공익이 충돌할까? 법률유보와 비례의 네 질문을 학교 규칙에 빗대어 차례로 적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