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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기본 · 2/14 · 약 3

재현과 표현

01. 닮게 그리는 일과 보이게 만드는 일

거울은 얼굴을 꽤 닮게 비춘다. 그렇다고 거울을 곧바로 초상화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반대로 눈이 턱까지 흘러내리고 하늘이 붉게 뒤틀린 그림은 현실과 닮지 않았는데도 불안한 밤을 더 정확히 보여 주는 듯하다. 예술에서 재현과 표현은 ‘사실적인 그림’과 ‘이상한 그림’을 가르는 딱딱한 칸이 아니다. 작품이 바깥 대상을 어떻게 다시 제시하고, 생각과 정서를 어떤 감각 형식으로 드러내는지 묻는 두 방향이다.

재현은 현실을 복사하는 것보다 넓다

재현은 어떤 대상·사건·관념을 다른 매체 안에 다시 나타내는 일이다. 초상화는 사람을, 역사화는 사건을, 지도는 공간을, 연극은 행동을 제시한다. 이때 닮음은 중요한 수단이지만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지하철 노선도는 실제 거리와 방향을 크게 단순화해도 이동 관계를 잘 재현한다. 작품도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선택한다. 화면의 경계, 시점, 크기, 색은 이미 현실을 해석한 결과다.

그래서 “사진은 객관적이고 그림은 주관적”이라는 단순한 구분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사진도 렌즈·노출·프레임·촬영 순간을 고르고, 그림도 관찰한 형태와 빛을 치밀하게 기록할 수 있다. 중요한 질문은 현실과 똑같은가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보존하고 어떤 관점을 새로 넣었는가이다.

표현은 마음을 쏟아 놓는 일만은 아니다

표현은 보이지 않는 정서·태도·관념을 감각할 수 있는 형식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거친 붓질, 눌린 색, 불안정한 리듬은 말로 설명하지 않은 긴장을 느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강렬한 색이 언제나 격정을 뜻하지는 않는다. 감각 요소의 기능은 작품 안의 다른 요소와 맥락에서 정해진다. 따라서 감각 요소는 종류만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정서와 주제를 만드는 기능까지 함께 보자.

표현을 작가의 실제 감정과 바로 같다고 보기도 어렵다. 배우가 절망을 연기한다고 실제로 절망한 것은 아니며, 차분한 작곡가가 격렬한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 작품이 표현하는 정서와 창작자의 순간 감정은 구별해 보자.

둘은 대립하기보다 겹친다

한 초상화는 얼굴 생김새를 재현하면서 눈빛과 자세로 권위나 불안을 표현한다. 한 편의 영화는 실제 거리 풍경을 기록하면서 편집과 음악으로 고독을 만든다. 재현과 표현은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이 사라지는 스위치가 아니다. 무엇을 보여 주는가와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가 한 작품 안에서 만난다.

작품 앞에서 세 질문을 던져 보자. 무엇이 다시 제시되었나. 원래 대상에서 무엇이 선택·생략·변형되었나. 그 변형은 어떤 태도나 정서를 드러내나. 이 질문은 작가의 마음을 추측하는 대신 화면과 소리 안에서 근거를 찾게 해 준다.

재현과 표현은 무엇을 향하는가
읽기 포인트: 한 작품은 대상을 닮게 재현하면서 동시에 작가나 시대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이런 글에서

“The standard candidates are representational properties, expressive properties, and formal properties.”

The Definition of Art,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예술을 정의하려는 전통적 논의가 재현·표현·형식이라는 서로 다른 후보를 세워 왔다는 문장이다. 한 작품을 볼 때도 세 관점을 경쟁시키기보다 차례로 비춰 보면 놓치던 면이 드러난다.

출제 이력

출제 이력

평가원 ·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 재현론과 표현론

한눈에 정리

재현과 표현 읽기 지도

재현 → 대상·사건·관념을 매체 안에 다시 제시
선택과 생략 → 재현에도 관점이 들어가는 지점
표현 → 정서·태도·관념을 감각 형식으로 드러냄
작품의 정서 ≠ 작가의 순간 감정
좋은 질문 →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 무엇이 느껴지게 했나

생각해 볼 거리

친구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과 몇 개의 색면만으로 그 친구의 분위기를 잡은 그림 가운데 어느 쪽이 그 사람을 더 잘 보여 줄까. ‘잘 보여 준다’의 기준부터 나누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