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하나 여쭤볼게요.
새로 산 가전제품의 설명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시나요?
안 외우시죠.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으시잖아요.
수능 국어가 바로 그겁니다.
지문이라는 설명서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학생들은 그걸 외우려고 합니다.
— 학부모 상담 중
그 학생은 전형적인 이과생이었습니다.
수학은 잘하는데 국어만 보면 자신감이 사라지는 학생이요.
상담해보니 이유가 금방 보였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수학은 공식을 외우고, 유형을 익히고, 머릿속에서 꺼내 쓰는 시험이니까요.
그 습관 그대로 국어에 적용하면 — 지문을 읽으면서 내용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국어 실력이랑 별개로, 국어 시험을 어떻게 봐야 되는가.
이 구분을 못 하면 공부량을 아무리 늘려도 성적은 안 오릅니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수능 국어를 어렵고 까다로운 시험이라고 생각하십니다.
맞습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불공정한' 시험은 아닙니다.
평가원이 설정한 출제 규칙과 제약 조건이 있습니다.
수능 출제 매뉴얼의 핵심은 단 하나 — 주어진 텍스트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출제한다는 겁니다.
즉, 답의 근거는 반드시 지문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건 규칙입니다.
평가원은 근거를 숨기지 않습니다. 숨길 수가 없습니다.
이건 시험의 제약 조건이자, 학생에게 주어진 무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은 이 무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시험을 봅니다.
그러면 오픈북을 오픈북답게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능 독서 자체를 하나의 설명서처럼 바라보면서 읽는 겁니다.
설명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뭘 하시나요? 목차를 봅니다.
지문을 하나의 약간 설명서처럼 머릿속에 목차를 만들어서 읽는 겁니다.
1문단은 뭐 얘기, 2문단은 뭐 얘기 — 이 정도만 잡아두세요.
외우는 게 아닙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위치'만 파악하는 겁니다.
세탁기 설명서에서 탈수 설정을 찾을 때, 1페이지부터 정독하시나요?
아니죠. 해당 항목을 찾아서 그 부분만 읽으시잖아요.
문제를 읽고, 뭘 물어보는지 파악한 다음,
아까 잡아둔 목차를 근거로 해당 문단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전체를 다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선지를 보고 '맞는 것 같다'로 고르면 안 됩니다.
지문의 어디에 근거가 있는지 손가락으로 짚을 수 있어야 합니다.
평가원이 근거를 반드시 넣어놨으니까요.
짚을 수 없으면 그 선지는 다시 보는 겁니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원칙입니다.
"국어 시험 볼 때 지문을 외우려고 하니, 아니면 찾아보면서 푸니?"
이 질문 하나로 자녀가 오픈북으로 보고 있는지,
클로즈드북으로 보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외우려는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국어 성적은 달라집니다.
답은 이미 지문 안에 있습니다.
찾는 방법만 알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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