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수능완성 · 실전2회
귀리집과 제주 4·3의 성담
이 자료는 제주 4·3의 폭력 속에서 강제 이주된 귀리집이 성담 쌓기와 굶주림, 바다 봉쇄를 겪는 장면이다. 성담은 보호의 장치처럼 보이지만 주민들에게는 강제 노동과 통제의 상징이며, 바다는 생계의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금지와 봉쇄의 공간으로 제시된다.
공식 지문 원문
EBS 2027 수능완성 실전2회 p.171[24~2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 줄거리] 귀리집은 중산간 마을인 노형리의 주민으로, 군경에 의해 마을이 전소되면서 해변의 서호마을로 강제 이주된다. 귀리집은 좌익 무장대와 군경을 피해 달아나다 행방이 묘연해진 남편의 생사를 궁금해하고, 성담을 다 쌓아 통행이 허락되면 읍내에 있는 아들 순원을 만날 생각에 들뜬다.
울력꾼들은 이제 성담을 끼고 도령마루 쪽으로 걸어간다. 어른 키의 두 배 높이는 실히 됨 직한 성담을 올려다보고, 또 성담 따라 끝 간 데까지 눈길을 보내어, 성이 멀리 도령마루 위로 가물가물 기어오르는 모양을 바라보면서 귀리집은 새삼 놀란다. 한 달 새에 저렇게 많이 일을 했나? 고생도 되게 하긴 했지. 손끝이 닳아 조막손이 되는가 싶었지. 특히 왼손은 흉측하기가 말이 아니다. 한번 찍힌 돌에 검지는 손톱이 빠지고 중지는 가운데 뼈 마디에 흉한 혹이 생겼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역사가 모두 끝난단다. 이제는 설마 울력' 나오라는 말이 다시는 없겠지.
바람결이 꽤 차다. 밭 경계선마다 둘러쳐져 바람막이가 되던 밭담이 죄다 없어졌으니 바람은 아무 거칠 것 없이 마구 휙휙 불어제친다. 귀리집은 바람이 불어오는 왼편 귀뺨을 머릿수건으로 잘 단도리한다. 등에 진 마른 솔가지 짐이 바람에 부스럭거린다.
울력꾼들은 여편네들과 열두서너 살짜리 어린것들이 대부분이고 어른 남자라곤 벌초한 봉분처럼 머리가 민둥한 중늙은이들이고 젊은 축들은 별반 보이지 않는다. 개중에는 파뿌리 머리칼을 정수리에 옹쳐맨 상투짜리 일흔 넘어 뵈는 노인네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별안간 쌀쌀해진 날씨에 빡빡 깎은 머리빡이 시렸던지 낡은 중절모나 도리우찌, 개가죽 감투, 또 하도 헐어서 죽은 까마귀 날갯죽지같이 몰골이 흉한 남바위를 쓰고 나온 노인들도 더러 있는데, 이들은 묻지 않아도 서호 본고장 사람들이 틀림없으리라. 불탄 우리 노형마을에서 소까이되어 온 사람들이 어느 경황에 저런 방한모를 챙겨 가져올까 말이다.
오도롱만 남겨 놓고 다섯 부락 모두가 한날한시에 불타던 노형리 소까이. 저번 날 읍내에서 선무 공작대가 성담 쌓는 데까지 찾아 올라와서 한 시간 동안 말자랑뿐인 시국 연설을 늘어놓다 갔는데, 그때 노형 사람들이 제일로 원통해하는 소까이 문제를 놓고 반죽 좋게 너스레 떠는 것을 귀리집은 들은 적이 있다. 산 폭도가 양민 가운데 숨어 살기를 머릿니가 걸바시" 헌머리에 서캐 쓸듯 하니 어느 하세월에 챙빗으로 굵은니며 가랑니며, 서캐를 훑어 내 잡을 것이냐. 아예 석유 기름 붓고 머리칼을 홀랑 태워 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마을을 불태운단다. 생사람 대가리에 석유를 부어 불태우다니, 머릿니 잡는다고 생사람 잡는 게 소까이란 말인가. 집과 양식이 불타고, 소개민 중에는 폭도 가족이라고 지목된 여편네들이 여럿 죽고 심지어
는 할망, 할으방마저 더러 죽었다.
(중략)
귀리집은 바람 불어오는 바다 쪽으로 힐끗 눈을 준다. 방금 가로질러 건너온 일주 도로에는 모래바람이 뽀얗게 일고 있고, 그 너머 해변가의 도두봉 양옆으로 뽕그랗게 부풀어 올라 있는 바닷물마루(수평선)는 높하늬바람에 부대껴 험상궂게 울퉁불퉁하고 흰 거품을 일으키는 물이랑들이 수없이 바다 들판을 뒹굴고 있다. 깔축없이 갈치 떼가 허옇게 뜬 격이로고. 참말 저것들이 몽땅 갈치 떼라면 얼마나 좋을 거나. 하룻밤 배 띄워 흔전만전 잡아다가, 빈 몸으로 이 해변에 소개해 와서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우리 노형마을 사람들 곯은 배를 한번 양껏 채워나 봤으면······ 노란 햇조밥에 군 갈치. 구울 때 들러붙은 검정 조 짚불 재도 털지 않고 먹는 그 살진 맛이라니. 조바심 철이면 해변가 도두리, 서호 아지망들이 대구덕에 갈치를 지고 올라와 팔았었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당장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오목가슴이 쓰려 왔다. 점심을 안 먹은 귀리집은 오늘만은 아들놈을 만나 점심을 같이 할 요량으로 조반을 굶고 있는 터이다. 몇 발짝 못 걸어가 이번엔 얼핏 어지럼증이 일어나 희뜩희뜩 헛것이 보인다. 다리 맥살이 빠져 주저앉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계속 걸어간다.
하지만 저 바다에는 주낙배를 띄울 수 없다. 온 섬 포구의 배란 배는, 심지어 자리태우(뗏목 배)마저 모두 뭍에 끌어올려져 배 밑굽이 이끼와 잡초에 싸인 채 몽창몽창 썩어 가고 있다. 고기 잡던 보제기 남정네들이 폭도로 의심받아 산으로 들로 굴을 찾아 도망쳐 버려서 배 부릴 사람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래도 해변 부락들은 중산간보다는 덜 의심받아서 남정네들이 더러 남아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네들도 배를 탈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물, 닻, 삿대, 돛 등 마을의 모든 선구가 민보단 단장 집에 압수되어 들어가 있기 때문이란다. 폭도들의 해상 탈출을 막기 위해 입어(入漁) 금지령이 떨어져 있는 터라, 뭍 가까운 얕은 물에서 하는 해녀들의 물질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해녀들의 궁둥짝같이 넓적둥글한 태왁도, 그물 망시리도 좀먹어 구멍 쑹쑹한 추녀 기둥에 걸린 채 하늬바람에 덜그럭덜그럭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계엄령이 떨어져 있는 저 제주 바다에는 배가 뜨지 않는다. 항시 감시 군함 두엇이 앞바다를 오락가락할 뿐, 쪽박 하나 뜨지 않는다. 귀리집은 다시 바다로 눈길을 돌린다. 그러나 흐린 바다 물빛에 어울려 잿빛 군함들은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잠시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하나는 한림 쪽을 향해 막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중이고 다른 하나는 멀리 수평선까지 흘러가 파도에 가려졌다 보였다 하고 있다. 이렇게 사방이 바다로 꽉 막혔으니, 산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독 안에 든 쥐일 수밖에. 바다를 막아 놓고 군경 합동 토벌군은 섬을 뺑 둘러 해변에서부터 쭉 훑어 올라간단다. 폭도들이 해변을 습격해 올 때 숨을 만한 해변가 일주 도
로 근처 밭담이란 밭담은 죄다 허물고, 솔수펑, 수리대[箭竹]밭도 태우고, 폭도들이 죽창 만들지 모른다고 왕대밭도 태우고, 핑곗김에 마을 정자나무, 늙은 팽나무 신목(神木)도 잘라 팔아먹고, 당도하는 중산간 부락마다 모조리 불태워 그 불기에 몸을 녹이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점점 좁혀 간다. 이젠 뛰어 봐야 그 풀밭이 그 풀밭인 메뚜기 꼴이다. 이건 몰이사냥이다. 옛날 육지서 들어온 제주 목사(牧使)들이 농사일에 바쁜 섬 백성을 온통 몰이꾼으로 내몰던 노루 사냥이 그랬듯이 이 잡듯이 샅샅이 훑어 올라간단다. 몰이사냥엔 노루 말고도 지다리(오소리), 산토끼같이 작고 변변치 못한 것들도 몰이꾼 몽둥이에 맞아 죽게 마련이다. 산 폭도 사냥이야 백번 옳지만, 혹시 멀쩡한 양민은 어찌 되나? 순원이 아방처럼 다만 남자로 태어난 것이 유죄라 산에 오르지도 해변에 내리지도 못해 중산간의 동굴 속에 숨어 썩은 말고기를 먹고 산다는 남정네들은 어찌 되나? 불구의 몸이라 미처 피난 못 가고 불탄 집터에 타다 남은 조 짚가리 속에 숨어 사는 할망, 할으방 들은 어찌 되나?
- 현기영, 「도령마루의 까마귀」
*성담: 성(城) 주위에 쌓은 돌담. *울력: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함. 또는 그런 힘. *밭담: 제주도에서, 밭의 가장자리를 돌로 쌓은 둑. 밭의 경계도 되고 바람으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도 한다. *옹쳐맨: '동여맨(끈이나 새끼, 실 따위로 두르거나 감거나 하여 묶은.)'의 방언. *소까이: 강제 이주를 뜻하는 일본어. 화재나 공습 등에 대비해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주민이나 시설물을 분산하는 '소개'를 뜻함. *선무 공작대: 전시나 사변으로 군대가 출병하여 적국의 영토를 점령하였을 때,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을 군에 협력하도록 하거나 적어도 적대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행하는 선전 · 원조 따위의 활동을 하는 단체. * 걸바시: '거지'의 제주 방언. * 서캐: 이의 알. * 할망, 할으방: '할머니', '할아버지'의 제주 방언. *아지망: '아주머니'의 제주 방언. *아방: '아버지'의 제주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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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관점
- 귀리집은 마을이 불타고 해변 마을로 강제 이주된 인물이다.
- 성담 쌓기는 주민들의 손과 몸을 상하게 하는 강제 노동으로 나타난다.
- 소까이는 폭도를 잡는다는 명분 아래 마을과 민간인을 파괴한 폭력으로 서술된다.
- 바다는 갈치와 생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입어 금지와 감시로 막힌 공간이다.
핵심 흐름
- 앞부분 상황역사적 폭력의 배경
노형리 전소와 해변 마을 강제 이주
- 성담통제와 고통의 상징
마을을 둘러싼 높은 담과 강제 노동
- 소까이국가 폭력의 기억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희생시킨 작전
- 바다희망과 봉쇄의 공간
갈치와 생계의 기억, 그러나 입어 금지
- 귀리집의 몸폭력의 신체화
손의 상처, 허기, 어지럼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