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7 수능완성 · 실전2회

「나비의 여행」, 「새1」, 까치집 산문

문학p.16818–23번OX 20

이 자료는 전쟁과 공포 속에서 아가를 바라보는 시, 새의 순수와 그 훼손을 말하는 시, 까치 소리와 까치집의 정서를 풀어낸 산문을 함께 읽는다. 세 자료는 모두 새나 날개 이미지를 활용하지만, 정서의 방향은 공포, 순수, 반가움과 소쇄함으로 다르게 전개된다.

공식 지문 원문

EBS 2027 수능완성 실전2회 p.168

[18~2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의 강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나르다가 깜깜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表紙)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 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나)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A]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쭉지에 파묻고 다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 새는 울어

- 정한모, 「나비의 여행」

뜻을 만들지 않고,

[B]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하지 않는다.

3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C]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 박남수, 「새1」

(다)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깍'은 얕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이 그저 반갑다.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날은 기분이 좋다.

반포지은(反哺之恩)을 안다고 해서 효조(孝鳥)라 일러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길조(吉兆)라서 그해에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영전(榮轉)이 되었다던가, 서재(書齋) 남창 앞 높은 나뭇가지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글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文名)을 날렸다던가 하는 옛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

아침 까치가 짖으면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이 가장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반가운 소식의 예고같이 희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까치뿐이 아니라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 높은 나무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엉성하게 얽어 논 것이, 나무에 그대로 어울려서 덧붙여 논 것 같지가 않고 나무 삭정이가 그대로 떨어져서 쌓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쇄한 맛이 난다. 엉성하게 얽어 논 그 어리가 용하게도 비가 아니 샌다. 오직 달빛과 바람을 받을 뿐이다.

나는 항상 이담에 내 사랑채를 짓는다면 꼭 저 까치집같이 소쇄한 맛이 나도록 짓고 싶었다. 내가 완자창이나 아자창을 취하지 않고 간소한 용자창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정서에서다. 제비집같이 아늑한 집이 아니면 까치집같이 소쇄한 집이라야 한다.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부인이 매만져 나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하고 풍류스러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비둘기장은 아무리 색스럽게 꾸며도 장(場)이지 집이 아니다. 다른 새집은 새 보금자리, 새 둥지, 이런 말을 쓰면서 오직 제비집, 까치집만 집이라 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의 집에 대한 관

념이나 정서를 알 수가 있다. 한국 건축의 정서를 알려는 건축가들은 한번 생각해 봄 직한 문제인 듯하다. 요새 고층 건물, 특히 아파트 같은 건물들을 보면 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그것은 '사람장'이지 '집'은 아니다.

지금은 아침 여덟 시, 나는 정릉 안 숲속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오래간만에 까치 소리를 들었다. 나뭇잎들은 아침 햇빛을 받아 유난히 곱게 푸르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차갑게 맑다. 그간 비가 많이 왔던 관계로 물소리도 제법 크게 들려온다. 나는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여길 와 본 적이 있었다. 보건 운동을 하러 온 사람, 약물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 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윽한 숲속이 한없이 고요하다. 지금이 제일 고요한 시간이다. 까치들이 내 앞에 와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이른바 까치걸음이다. 손으로 만져도 가만히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사람이 옆에 앉아 있다는 데는 아무 관심이나 의구심도 없이 내 옆에서 깡충깡충 뛰놀고 있다.

나는 일찍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민화(民) 하나를 생각한다. 한 노옹(老翁)이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낮잠을 자는데, 그 배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나는 신기한 그 상상화에 기쁨을 느꼈다. 민화란 어린아이와 자유화(自由書) 같이 천진하고 기발한 데가 있어서 저런 재미있는 그림도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저 까치들을 보고 그것은 기발(奇拔)한 상상이 아니요,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이지봉(李芝峯)이 정호음(鄭湖陰)의 "산과 물이 바람에 소리치며, 강물은 거세게 울먹이는데, 달은 외로이 비쳐 있다. 는 시를 보고 '강물이 거세게 이는데 달이 외롭게'라는 건 실경(實景)에 맞지 않는다고 폄(貶)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고요히 밝은 밤중에는 물결이 잔잔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김백곡(金栢谷)이 황강역(黃江驛)에서 자다가 여울 소리가 하도 거세기에 문을 열고 보니 달이 외롭게 걸려 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그 구가 실경을 그린 명구(名句)인 것을 알았다는 시화(詩話)가 있다. 나도 그 민화가 실경인 것은 모르고 기상(奇想)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 태고연(太古然)한 풍경의 민화 한 폭이 다시금 눈앞에 뚜렷이 떠오른다.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누워서 잠자는 노옹(老翁), 그 배 위에 서 있는 까치 한 마리.

*기상: 좀처럼 짐작할 수 없는 별난 생각. * 태고연한: 아득한 옛 모습 그대로인 듯한.

읽기 전 관점

  • 「나비의 여행」은 아가의 꿈길에 전쟁의 공포와 그리움이 끼어드는 장면을 보여 준다.
  • 「새1」은 노래와 사랑을 의식하지 않는 새의 순수함을 강조한다.
  • 포수의 총은 새의 순수를 겨냥하지만 실제로는 상처 입은 새만 남긴다.
  • 까치 산문은 까치 소리와 까치집을 반가움, 희망, 소쇄한 집의 미감으로 해석한다.

핵심 흐름

  1. 아가의 꿈길순수한 존재가 겪는 불안 제시

    기억과 내일로 향하지만 전쟁과 공포에 부딪힘

  2. 새의 순수순수의 본질 제시

    노래와 사랑을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존재

  3. 포수폭력과 순수의 훼손

    순수를 겨냥하지만 상한 새만 남김

  4. 까치 소리일상적 자연물의 정서화

    기교 없는 두 음절이 반가움과 희망을 줌

  5. 까치집집에 대한 글쓴이의 취향 표현

    엉성하지만 소쇄한 집의 미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