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수능완성 · 유형편
섬네일과 영상 다큐의 정보 설계
이 자료는 영상 다큐멘터리의 섬네일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본 영상이 능행의 역사적 의미와 구체적 일화를 설명하는 방식을 비교한다. 섬네일은 제목, 문구, 재생 시간, 참여 유도 표현으로 기대를 만들고, 영상은 음악, 화면, 내레이션, 기록 인용, 애니메이션으로 정보를 확장한다.
공식 지문 원문
EBS 2027 수능완성 유형편 p.112[01~03] (가)는 영상 다큐멘터리를 소개한 마중 그림(섬네일)의 이미지이고, (나)는 (가)에서 소개한 영상 다큐멘터리이다. 물음에 답하시오.
(가)
[이미지 자료] □□ 역사 다큐 조선 왕의 능행 길을 따라서 - 건원릉 편 어느 가족의 기구한 사연이 담긴 능행 길 백성을 살피는 왕의 마음이 담긴 임꺽정봉 이 영상이 마음에 들면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 12:08
(나)
(웅장한 국악과 함께 화면에는 점점 멀리서부터 가까이 능을 보여 줌. 음악이 끝나면 내레이션이 들림.)
[이미지 자료] 조선 왕의 능행 길을 따라서 - 건원릉 편
[이미지 자료]
[이미지 자료] 조선 왕조 전체 총 940회 능행
[이미지 자료] "서천이 물이 불어서 송계교를 건널 수 없습니다."
(내레이션) 조선 시대 국왕은 여러 가지 목적으로 종종 궁궐이나 도성 밖으로 나갔다. 왕이 행차하는 날은 특별한 날로 공식 업무도 잠시 멈췄고, 남녀노소 많은 사람이 왕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렸다. 그 정도로 큰 행사였던 것이다.
특히 선대 왕이나 왕비의 능에 제사를 지내거나 참배하기 위해 왕이 행차하는 일을 나타내는 '능행(陵幸)'은 왕조의 정통성을 확인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컸다. 국가유산청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사망한 1926년까지 535년 동안 조선 왕실의 왕릉군이 있는 동구릉, 서오릉 등으로 총 940회의 능행이 이뤄졌다. 한 해 평균 1.76회 왕릉으로 향한 것이다.
경기도 양주의 동구릉(현재 구리시 소재)에는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을 비롯한 여러 왕릉이 있다. 그중에서 건원릉으로 향하는 능행 길로, 임꺽정봉에서 물줄기가 시작된 '서천'을 중심으로 하는 사연을 보자. 조선 시대 역대 왕들은 건원릉 참배를 위해 서천을 건너야 했다. 『태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임금이 건원릉에 행차하려고 하자 신하가 "송계원의 서천이 물이 불어서 송계교를 건널 수 없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중랑천 근방에 국립 숙소인 송계원이 있어서 중랑천을 송계라고 불렀고, 송계교는 송계에 고려 시대부터 있던 목조 다리로 개경과 남경의 동남부 지역을 잇는 교통로였다. 조선 시대에도 그 역할이 중요했으나 툭하면 유실되거나 범람하여 건너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태종이 목조 다리를 석조 다리로 바꾸라고 명령을 내려 대대적인 부역이 시작되었다.
[이미지 자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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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관련된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하여 보여 줌.)
이 대규모 공사에 양주에 사는 모든 장정이 동원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중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그는 앞을 거의 못 보는 맹인이어서 부역을 면제받아야 했으나, 관리의 강압으로 부역을 해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
그러자 중이의 열여섯 살 된 딸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부역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남장을 하고 부역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돌을 나르고 쌓는 일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소변을 보는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가 어려운 상황을 참고 견뎌야 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두 가지로 전해진다. 행복한 결말은 중이의 딸이 남장을 하고 부역을 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서 양주 현감에게 끌려갔으나, 관아에서 그녀의 효심에 감동하여 상을 내리고 딸을 가족에게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슬픈 결말은 중이의 딸이 소변 횟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물도 거의 마시지 않은 채 부역을 했고, 탈수 현상으로 쓰러져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후 세상 사람들이 그를 '중 낭자'라고 부르며 추모했다고 한다.
(전설이 전해지는 지역 주변의 오늘날 사진을 보여 줌.)
당시에 석조 다리가 완공되었기에 이후의 다른 왕들도 여러 차례 건원릉을 참배할 수 있었다. 전설 속 '중 낭자'의 사연은 오늘날 유래 비석으로 남아 있다. 또한 중랑천 주변 콘크리트 다리 아래에는 이 석조 다리가 묻혀 있다는 기록과 함께, 그 옆에는 그 다리가 능행 길을 돕는 든든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문구가 있다. 이렇게 역사 속 사연을 담은 장소는 현대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면면히 살아서 함께하고 있다.
읽기 전 관점
- 섬네일은 영상의 핵심 소재와 흥미 요소를 압축해 제시한다.
- 영상 다큐는 능행의 의미, 횟수, 장소, 역사 기록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 내레이션과 화면 자료는 역사 정보를 쉽게 따라가게 하는 안내 장치이다.
- 전설이나 일화는 역사적 장소에 정서적 흥미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핵심 흐름
- 섬네일시청 전 기대 형성
제목, 부제, 재생 시간, 반응 유도 표현
- 도입 화면주제 몰입 유도
음악과 능의 화면으로 분위기를 만든다
- 역사 설명개념과 배경 정보 제공
능행의 의미와 조선 왕실의 왕릉 행차 횟수 제시
- 기록 인용역사적 근거 제시
태종실록 등 기록을 통해 다리와 행차 문제를 설명
- 이야기화정보의 정서적 전달
중이 가족의 일화와 애니메이션 연출